250117 기존의 인형들:인형의 텍스트

떠제 2025. 1. 20. 23:19

 

 

올해 첫번째 창작산실 관극이다.

 

 

 

 

공연소개

인형으로부터 시작된 세 편의 단막극: (이지형)의 (인형)으로부터 (안정민), (신효진), (김연재)

‘불가능성의 가능성’

인형의 불가능성

단막극A : 이야기하기의 불가능성

단막극B : 공존하기의 불가능성

단막극C : 관계맺기의 불가능성

 

 


a. <한 명 또는 두 명의 인간은 바늘구멍 속에서 바늘을 이야기한다.> 안정민 作

 

작품소개: 

하나의 단단한 이야기가 삶을 구원해줄 거라는 믿음은 허무하다. 세계는 이야기의 구원이 필요 없을 수도 있다. 나는 구원을 꿈꾸지 말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 어쩌면 완전히 반대일지도? 나는 파괴를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세상은 파괴를 원한다. 구원을 위해 만들어진 믿음직해보이는 이야기에는 근본적으로 진실 따위가 없을 수도 있으니까. 잘 정제된 선형적 이야기는 작고 울퉁불퉁한 목소리들을 무가치한 것으로 규정한다. 표면이 매끄러운 그 이야기는 폭력이다. 불쑥불쑥 태어나는 어린 이야기들의 혀를 잘라낸다. 자신이야말로 구원의 가능성을 품고 있기에, 더 가치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것이 아닌 자신을 읽으라 종용한다. 이야기의 칼날을 휘두른다. 나는 헛된 희망과 그 대가인 폭력으로부터 풀려나고 싶었다. 세계의 조각들을 그저 무수히 조각나도록 두고 싶다, 인형처럼. 인형은 세상으로부터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인형은 구원을 찾지 않는다. 인형은 세상을 그저 그런 세계로 바라본다. 세상은 인형에게 거짓말할 수 없다. 나는 인형만이 볼 수 있는 조각난 세계를 아주 짧게라도, 밀리밀리 초라도 체험하고 싶었다. 

 

시놉시스: 

하나의 단단한 이야기를 써내는 인간이 있다.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구원하길 꿈꾸고 욕망한다. 그가 인형을 만났다. 인간은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그리고 인형을 완전한 세계 속의 주인공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런데 그가 인형을 만나는 순간, 그는 조각난다. 거울에 비친 그의 그림자, 반사체가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의 반사체는, 이야기를 쓰려는 인간에게 조각난 세계, 비듬과 각질의 세계에 대한 아름다움을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b. <범람> 신효진 作

 

작품소개: 

세상에 인간의 형태를 한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면 그것은 필시 인간이 외롭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 그 인간을 닮은 것에게는 외로움이 없을까요? '마음'이 있는 것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말에서 '마음'을 느끼는 건 외로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곰돌이 인형의 녹음된 'I LOVE YOU' 사운드에서도 우리는 사랑을 느끼지 않나요?

 

시놉시스: 

식물로 뒤엎인 근미래, 한 인간과 한 로봇이 도망을 다니다가 오두막에 도착한다. 고장난 로봇은 과거 저장된 몇 개의 음악을 가지고서만 의사표현을 할 수 있다. 한 인간과 한 로봇은 끝을 피해 이곳에 다다랐지만, 세상에는 피할 수 없는 것이 더 많다.

 

c. <한쪽 발은 무덤을 딛고 나는 서 있네> 김연재 作

 

작품소개: 

나에게 주어진 인형은 과거 어느 공연에서 시체로 등장한 이력이 있다. 인형이 맡은 역할은 제주 4.3 사건의 이름 없는 유해였다. 죽음을 위해 태어난 인형. 겉이 코팅되지 않은 그것은 점차 마모되며 존재를 분실해가고 있었다. 인형을 바닥에 누이고 온몸에 입을 맞추었다. 손과 입이 검어졌다. 나는 납작 엎드려 생각했다.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존재를 사랑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생의 한가운데서 누출되는 죽음을 어떻게 만질 것인가. 배선희가 여기에 답할 것이다.

 

시놉시스: 

늙은 마르타는 목소리를 듣는다. 태어남과 동시에 자신에게만 들려왔던 목소리. 죽음을 하루 앞둔 밤, 마르타는 목소리를 찾아 지하세계로 여정을 떠난다.

 

연출/안무 의도

 

인형작업자 ‘이지형’입니다.

인형을 생각하다보면 결국 인간과 비교를 하게 됩니다.

우리 인간의 말 한마디, 눈짓 한 번이 인형에게는 왜 그리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작은 인형이든 큰 인형이든 인간에게 당연한 것들이 인형에게는 매 순간 한계처럼 다가옵니다. 이런 불가능성을 가진 인형이 작가에게, 작가의 글이 다시 인형 작업을 하는 연출에게 돌아왔습니다.

 

독립된 세 편의 단막극이 모여 하나의 공연으로 엮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본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인형이 작가에게, 연출에게, 배우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전달되는 구조 안에 각각의 인간은 어떠한 방식으로 존재하게 될까요. 어떠한 방식이든 (인형의-,)불가능성에서 단막극별(이야기의-. 공존하기의-. 관계 맺기의-,) 가능성을 찾는 과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개선된 인형, 분해와 재조립이 가능한 인형, 

인간(배우)처럼 재현과 현존을 오가는 인형, 

지속 가능한 인형

 

기획 의도

 

기존의 인형들은 인형작업자가 마주하고 있는 한계에서 출발합니다.

 

어떻게 하면 인형이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어떠한 가능성을 꿈꿔볼 수 있는지를 실험하기 위해 뻔한 인형 개선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인형을 만드는 사람이 어떠한 텍스트보다 먼저 움직여봅니다. 그동안 다양한 형태의 무대에서 사용되었던 인형의 특징들을 해체하고 조합하여 놀이를 시작합니다.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 인형을 개선합니다.

 

올해로 네 번째를 맞이하는 <기존의 인형들> 프로젝트는 세 명의 작가들과 ‘인형의 텍스트’를 주제로 세 편의 희곡을 지난해 ‘창작의 과정’을 통해 기록되었습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들에게 ‘글의 시작점’에 인형을 건네줌으로써, 인형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했습니다. 그동안 <기존의 인형들>을 통해 무대에 선 보였던 9개의 장면 속에 인형들이 무명의 퍼포머로 바라봐졌다면, 이번 <기존의 인형들: 인형의 텍스트>에서의 인형은 작가들이 생성한 하나의 ‘인물’로 각각의 희곡에 기록되었습니다.

 

출연진 및 제작진 소개

 

-연출/구성: 이지형

-작가: 안정민, 신효진, 김연재

-배우: 박서현, 정윤진, 김별, 배선희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 문수빈

-드라마터그: 김지혜

-액팅코치_단막극a,b: 황혜란

-조연출: 김조이혜수, 정나금

-컴퍼니매니저: 김민주

-티켓매니저: 조아라

 

-무대감독: 김동영

-무대디자인: 신승렬

-조명디자인: 김효민

-음향: 지미세르

-영상감독: 황호규

-그래픽디자인: 정김소리

-기록영상: 최강희

-접근성 스태프: 박하늘

-한국어 자막해설 오퍼레이터: 이우람

-무대조감독: 김대희

-조명 오퍼레이터: 정성연

-조명팀장: 김형표

-조명크루: 손태민, 최예원, 이경국, 이상혁

-무대제작: 애픽(APIC)

 

단체 소개

 

<조음기관(이지형) 인형 작업에 관한 선언문>

1. 인간 중심의 공연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2. 인형의 본질은 온전한 죽음을 의미한다. 

3. 오브제와 인형은 배우와 동일한 등장인물, 즉 배우이다. 

4. ‘연극의 전환수’, ‘인형의 조종자’의 관계에 대해 탐구한다. 

5. 하나의 배우 자체가 독립적인 공연이 될 수 있도록, 그래서 독립적인 여러 개의 공연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한다. 

6. 관객은 동일한 집단이 아니라 모두가 다른 개체이다. 

7. 인간이 내린 인형의 정의가 아닌, 인형 자체로 독립적인 정의에 대해 탐구한다.

8. 인형 자체의 한계(구조적, 태생적)를 인정하고 무대에서의 새로운 접근법을 탐구한다. 

*텍스트출처_아르코예술극장홈페이지

 

위 글들은 내가 기억하기 편하게 삽입했다.

 

내 얼굴보다 엄청 작다.

 

 

첫 번째)

무대 가운데 세트가 있고, 세트 중앙에 인형이 놓여있다. 그 주위 원 모양으로 객석이 구조되어 있다. 

 

포스트 드라마를 만들고 싶어 했을까? 인형을 매끄럽게 주로 이용하려고 했나? 과연 이 이야기를 함에 인형이 필요했을까?

 

기묘한 치실 효과음이 자주 흘러나온다. 듣다 보면 기묘해지는 상황으로 활성화되는 경험을 한다. 

 

그래도 객석마다 놓인 인형의 부품들을 만지며 보다 보면 그만의 감각을 통해 사유를 끌어낸다. 

 

 

첫 무대가 끝난 후, 관객들 손으로 인형무덤을 만든다.

 

 

두 번째) 

세트가 모서리로 이동되었다. 밑의 사진과 같이 문이 생겼고, 방의 모습으로 변했다. 

 

인간의 외로움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든다. 버려진 인형과 남겨진(버려진?) 인간의 이야기. 

 

인형의 언어는 노래로 발화되는데 묘하다.

 

감정은 인간에게만 있고 ai는 학습될 뿐인데 인형의 상태에 휘말리는 모습은 아이러니한 디스토피아다.

 

식물은 자라나 이 피난처를 위협하기 시작했고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인형을 두고 떠난다(인형은 머리 부분이 없는데 머리의 위치가 적혀있는 듯 한 지도를 인간이 가지고 있다. 그걸 갖고 떠난다.).

 

역시 주는 인간이었다(싫은 거 아님). 갖고 떠난 지도는 과연 인간의 마지막 남은 소위 말하는 인간다움이었을까? 외로움일까?

 

두 번째 극까지 보니 이 작품... 작가의 영향이 세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 개의 이야기가 관통하는 것이 아니라 세 작품을 보는 것이었다!

 

 

 

 

세 번째) 

배우가 끌고 가는 힘이 큰 작품이었다. 글 속에 담겨있는 그림들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하지만 마지막 작품을 보고 있던 나는..

 

힘이 많이 빠져있었다. 차라리 모든 극을 따로 봤다면? (아니면 체력이 좋다면 두 번 정도 보는 게 극을 감각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내 체력이 부족한 탓인지, 작가들에게 치였다..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들어간 작품이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지형 연출의 선언문을 보고 작년부터 흥미를 느꼈다.  

 

기대보다는 인형들의 역할이 조금 약했다고 본다. 

 

나도 나만의 인형 갖고 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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